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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추기경님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 15

        『 꿈처럼 아름다웠던 본당신부 시절 』




      성직생활 52년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순박한 교우들과 희노애락을 나눈 본당신부 시절이다.
      사진은 첫 부임지인 안동본당
      (현 목성동주교좌본당)의 여성 교우들.








"신부님 출장가지 마세요. 성당이 텅 빈 것 같아요"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는 안동 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방도를 찾기 위해 부산에 갔다가 '대박'을 맞은 사연은 이렇다.



주민들의 딱한 사정을 적은 영문편지를 들고 안 제오르지오(미국 주교회의 구호사업 한국지부장) 주교님을 찾아뵈었다. 하지만 안 주교님은 일본 출장 중이어서 사무실에 계시지 않았다. 대신 일본에 머물면서 한국 교황사절을 겸하고 계신 필스텐벨그 대주교님이 그 곳에 와 계셨다.



필스텐벨그 대주교님께 찾아온 목적을 말씀 드렸더니 내 편지를 갖고 윗 층으로 올라가셨다. 한참 후에 내려오신 대주교님은 뜬 금없이 "내일 안 주교님이 일본에서 돌아오니까 그분을 꼭 만나고 가게"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분 말씀대로 다음날 안 주교님을 찾아뵈었다. 안 주교님은 나를 보고 반가워하시면서 수표를 한장 끊여 주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뒤로 넘어질 뻔했다. 눈을 비비고 수표에 적힌 '0'자를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2'자 뒤에 '0'이 무려 7개나 달려 있었다. 2000만 원. 난생 처음 구경하는 거액이었다. 안 주교님은 대구에 계신 최덕홍 주교님께 전해주라면서 편지도 한통 건넸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 수표를 안주머니에 넣고 대구행 기차를 탔다. 누가 그 수표를 훔쳐 갈까 봐 무서워 기차가 터널에 진입하면 양 손으로 안주머니를 꼬 옥 감쌌다.



대구교구장이신 최 주교님께 수표와 편지를 모두 드렸다. 마음 속으로 '내게 300만 원만 떼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김 신부, 얼마쯤 받아 가고 싶은가?"
"제가 그걸 어떻게 말씀 드리겠습니까. 주교님이 주시는 대로 받아 가겠습니다."
"절반이면 되겠지"
"(절반이면 1000만 원? 그렇게 많이….) 아이고, 감사합니다. 주교님 감사합니다."



그 돈을 갖고 본당으로 돌아와 성당보수 작업을 시작했다. 주민들에게 돈을 무작정 나눠 주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일을 시키고 품삯을 후하게 쳐주었다.



그리고 궁핍하기 이를 데 없는 공소 신자들에게는 아주 은밀한 방법(?)으로 돈을 나눠 주었다. 신자들 중에 가장(家長)이 고해성사를 보러 고해실에 들어오면 교적을 대조해 가면서 집안 형편, 생업수단, 농사 평수 등을 꼬치꼬치 캐물은 후 형편에 따라 현금을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여긴 비밀이 지켜져야 하는 고해 방입니다. 여기서 돈 받은 얘기를 밖에 나가서 하면 절대 안됩니다" 하고 엄하게 못을 박았다. 누구는 더 받고, 누구는 덜 받은 게 알려지면 뒷말이 나올 것 같아서 그랬는데 다행히 잡음이 일체 없었다. 아마 그때 고해실에서 돈을 받은 신자들은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중세시대 루터는 교회가 면죄부라는 걸 이용해서 돈을 받아 챙겼다고 주장했는데 난 거꾸로 고해실에서 돈을 나눠 주었다.



첫 부임지라서 더 그랬는지 몰라도 안동본당(현 목성동주교좌본당) 사목생활은 정말 꿈처럼 달콤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매일 저녁에 교리 반을 열었다. 예비신자는 물론 교리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신자들이 많이 참석했다. 시골은 해가 지고 나면 마땅히 할 게 없는 터라 교리 반은 사랑방 역할도 했다. 교리수업이 끝나면 남성 교우들과 둘러앉아 안동소주를 몇 순배 돌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만큼은 언제 찾아와서 요청을 해도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해야 '착한 목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자들이 워낙 순박하고 정겹다 보니 금방 정이 들었다. 볼 일이 있어 대구에 가도 신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한시라도 빨리 안동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실제로 내가 대구에서 사나흘 볼 일을 보고 돌아가면 신자들이 성당 종탑 아래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안동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고개를 넘으면 나를 기다리는 신자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자들도 뽀얀 흙먼지를 날리면서 달려오는 버스가 보이면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 무렵 신자들이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신부님, 대구 가지 마세요. 신부님이 하루라도 안 계시면 성당이 텅 빈 것 같아 우리가 너무 적적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신자들과 한 가족이 됐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자들에게 특별히 잘한 것은 없다. 평소 신념대로 열과 성을 다했을 뿐이다.



안동 근처 예천본당에 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했던 신부가 사목을 했는데 그분은 나보다 전교를 잘해 신자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특히 우체국장, 경찰서장, 군수 같은 지역유지들을 척척 입교시켰다. 나도 그분 못 지 않게 열심히 전교했는데, 그리고 그분은 나보다 학교성적과 언변이 떨어지는데도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복음전교는 언변이나 지식보다 카리스마가 필요하고,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셔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도 그 때 깨달았다.



사랑도 풋풋한 첫사랑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성직생활 52년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오면 난 서슴없이 "가난한 신자들과 울고 웃었던 본당신부 시절"이라고 대답한다. 일선 본당신부 생활이라고 해 봐야 안동본당과 김천본당을 합해 2년 반 밖에 안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때 추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요즘도 그 시절에 사귄 신자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고백하건대, 난 주교로 살아가면서도 본당신부 생활을 무척 그리워했다. 혼자서 '이런 것(주교직무와 복장) 다 내려놓고 본당 신부로 가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궁리도 해 보았다. 사제 인사 철이 되면 시골본당으로 발령 난 신부들 중에는 가기가 싫어서 억지로 끌려가는 듯한 신부를 간혹 보게 되는데 그럴 때면 '자네가 가기 싫다면 내가 가서 본당신부 생활하고 싶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했다.



안동본당 시절의 추억을 더듬다 보니 "젊은 여자를 식모(식복사)로 두지 말라"는 어머니의 '제1계명'을 어긴 것이 들통났던 게 생각난다. 어머니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자를 식모로 뒀는데 어머니께서 성탄절을 앞두고 불쑥 성당에 나타나신 것이다.<계 속>



[평화신문, 제736호(2003년 8월 10일),김원철 기자]
[편집 : 원 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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