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조회 수 8052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김수환 추기경이 87세를 일기로 16일 오후 6시12분 별세했다. 1969년 당시 세계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돼 최고령 추기경으로 선종(善終) 했다.

김 추기경은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난해 8월29일부터 서울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해 6월11일 조촐한 생일파티가 세상에 공개된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후 끊임없이 위독설이 나돌았고 수차례 고비를 넘겼다. 최근에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졌다.

김 추기경은 생명연장 장치를 거부해왔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의료진이 매일 응급 처치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의식이 돌아올 때면 "대속할 일이 남아 있어 주님이 나를 살려두시나 보다"며 삶에 초연하기도 했다. 남의 죄를 대신해 당하거나 속죄하는 것이 대속(代贖)이다.

김 추기경은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취임하면서 대주교가 됐다. 이듬해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 탄생이다. 이후 30년 동안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2차례 역임했다.

김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이 됐을 때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봉사하는 교회', '역사적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이후 핍박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곧 관심을 가졌다. 독재와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서는 강경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역사적 순간마다 성직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70년대에는 정치적으로 탄압 받는 인사들의 인권과 정의 회복을 위해 일했다. 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이에 따라 한국천주교회는 오랫동안 정치권력에게 배제 당했지만 결국 천주교회의 지위는 격상됐다.

김 추기경은 장애인과 사형수, 철거민과 빈민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농민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도 헌신했다. 87년 '도시빈민 사목위원회'를 교구 자문기구로 설립, 소외된 이들을 돕는 서울대교구의 복지시설을 늘리는 데에 힘을 쏟았다.

최고의 종교 지도자였지만 스스로를 늘 부족하다고 여겼다. 99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70평생을 회고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책을 2권 펴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다.

이들 산문집에는 "가톨릭 최고의 성직자로서 예수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고백, "예수와 닮은 사제로서 살아오지 못했다"는 반성의 목소리를 담았다. "이웃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지 못함으로써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김 추기경의 사목 표어다. 자신의 신념을 온 몸으로 실천하다 떠난 김 추기경은 종교 지도자를 넘어선 대한민국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다.

윤근영기자 iamygy@newsis.com
<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 ?
    ggonjoseph 2009.02.16 21:39
    김수환 추기경 선종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 12분경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87세.

    1922년 5월 대구에서 태어난 김추기경은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부와 독일 뮌스터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1951년 사제로 서품됐다. 안동본당과 김천 황금동본당 주임을 거쳐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리고 있던 1964년 가톨릭신문 사장을 지냈고, 1966년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마산교구 주교로 임명됐으며,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이듬해 1969년 4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교회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 김수환(金壽煥)추기경 연보

    1922년 5월 8일(음력) 대구출생
    1941.3. 서울 동성상업학교 졸업
    1941.4. 일본 동경 상지대학교 입학
    1942.9. 위 대학 문학부 철학과 진학
    1944.1.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학업 중단
    1947.9~51. 6.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부에서 신학전공
    1956.10~63ㆍ1ㆍ독일 퀸스터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전공
    1951ㆍ9ㆍ 사제서품
    1951ㆍ9~53ㆍ4ㆍ대구대교구 인동천주교회주임신부
    1955ㆍ6~56ㆍ7ㆍ대구대교구 김천 황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겸 성의중·고등학교장
    1964ㆍ6~66ㆍ5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사장
    1966ㆍ 마산교구 주교 서임
    1966ㆍ6 주교서품, 마산교구장 착좌
    1968ㆍ4 서울 대주교 승품.
    1968ㆍ5 서울대교구장 착좌
    1969ㆍ4 교황 바오르 6세에 의해 추기경서임
    1970ㆍ10-75ㆍ2ㆍ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1차 역임)
    1970~73 아시아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1974ㆍ2ㆍ명예문학박사(서강대학교)
    1981ㆍ5-87ㆍ11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2차역할)
    1967ㆍ71ㆍ74ㆍ80ㆍ83ㆍ85ㆍ교황청 시노두스(세계 주교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
    1977ㆍ5 명예 법학박사(미국 노틀담대학교)
    1988ㆍ11ㆍ명예 신학박사(일본 상지대학교)
    1990ㆍ5ㆍ명예 철학박사(고려대학교)
    1990ㆍ10ㆍ명예 법학박사(미국 Seaton Hall대학교)
    1944ㆍ5ㆍ명예 신학박사 (연세대학교)
    1995ㆍ6ㆍ명예 철학박사 (타이완Fu Jen 가톨릭대학교)
    1997ㆍ7 명예 인문학박사(필리핀 Ateneo대학교)
    1998ㆍ4ㆍ로마에서 열린 아시아 특별 주교시노드 공통의장대리로 참석..
    1998ㆍ5월29일. 서울대교구장 착좌 30주년.
    1998. 5월 30일. 서울대교구장직 은퇴.

    + "사랑을 많이 하라"고 선종 며칠 전부터 주위 분들께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5 제7차 교구평협회의 안상덕 2009.07.22 7499
114 한국평협 2009년 제2차 상임위원회 안상덕 2009.07.09 7914
113 마산교구 바오로의 해 폐막미사 안상덕 2009.06.25 7836
112 바오로의 해 '폐막미사' 준비에 함께 참여합시다 안상덕 2009.06.25 7544
111 바오로의 해 '폐막미사' 준비회의 안상덕 2009.06.18 7447
110 창원지구 복음화아카데미(6월15일) 2 안상덕 2009.06.13 6841
109 홈페이지 수정완료! 3 관리자 2009.06.09 8437
108 홈페이지 점검및 리뉴얼중 관리자 2009.06.05 8518
107 바오로의 해 '폐막미사' 준비회의 1 안상덕 2009.06.01 7591
106 창원지구 복음화아카데미 참석자 신청안내 안상덕 2009.05.26 7240
105 부고<정순구신부님 선종> 1 안상덕 2009.05.17 7849
104 제6차 교구평협상임위원회의(참석댓글) 7 안상덕 2009.05.14 7855
103 제1차 복음화아카데미(진주지구) 개강 2 안상덕 2009.04.30 7893
102 한국평협상임위원회 평회회의 1 안상덕 2009.04.29 8002
101 교구평협위원님, 참석신청하기 6 안상덕 2009.04.13 7899
100 부활절 교구장 담화문 안상덕 2009.04.12 7691
99 제1회 복음화아케데미 개강안내 5 안상덕 2009.04.04 7524
98 교구평협 자문위원회의 개최 안상덕 2009.04.01 7669
97 한국평협상임위원회개최 3 안상덕 2009.03.31 8076
96 직능단체장 연석회의 2 안상덕 2009.03.16 7735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