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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호
발행일 : 2006-01-22
  



양승국 신부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원 원장)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맞아 서민들을 위한 경기가 살아나길 간절히 기대합니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나 재래시장 상인들도 이번 설에는 상황이 크게 호전되어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어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많은 분들이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귀향마저 포기한 사람들, 계속되는 노숙생활에 체력이 많이 소모된 분들, 어떻게 해서든 이번 겨울을 넘기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는 저희 집에서는 그나마 듣던 중 반가운 소식도 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가 계속되면서 가출했던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제 발로 귀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녀석들, 강추위에 아무데서나 웅크리고 자다가 얼어 죽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살아서 만나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따뜻한 둥지가 그리워서, 따뜻한 수사님들 품이 그리워서 다시 돌아온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 시대 우리 교회의 역할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따뜻한 벽난로와 같은 존재, 세상 한파로 꽁꽁 몸이 얼어붙은 사람들을 활활 타오르는 열기로 녹여줄 수 있는 다정다감한 교회, 인생막장에 내몰린 사람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열린 교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가슴 아픈 그들 사연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깨어있는 교회…'.

 세상에는 참으로 답답한 일도 많고 딱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세상이 살 만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픔과 시련을 이기고 힘차게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이 제 갈 길을 올바로 걸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옆에서 격려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힘겹게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 옆으로 조용히 다가가 희망을 이야기하는 우리, 좌절은 희망의 또 다른 모습임을, 절망도 힘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오늘, 하느님 자비에 감사하며 먼저 떠난 선조들을 기억하는 설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흥청망청 허송세월하지 말고 주님의 날을 잘 준비하라고 당부하십니다. 늘 깨어있으라고 강조하십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의 날을 잘 준비하는 길인지 생각해 봅니다. 어떻게 살아야 깨어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지 고민해 봅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깨어있다는 것은 하느님께 우선 순위를 두고 하느님 뜻을 찾으며 우리 채널을 하느님의 주파수에 고정시키는 일입니다. 잘 준비한다는 것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양심의 소리에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입니다.  

 뒷돈, 검은돈, 급행료, 촌지 등이 판을 치던 암울했던 시절, 한 기관에 근무하던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올곧은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단 한 번도 한눈 팔지 않던 사람, 절대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꿈도 꾸지 않던 사람, 양심에 찔리는 일은 엄두도 못 내던 그런 사람이었지요. 그러다보니 언제나 승진 대열에 밀렸습니다. 특히 결정적 승진 기회 때마다 그가 겪었던 고민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는 끝까지 편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정말 내적 갈등이 많았지만, 죽으면 죽었지 구차스런 방법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사이 동기들은 물론 후배들까지 저만치 앞서 나갔습니다. 가족들 앞에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후배들 보기도 민망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제 자리 걸음인 자신이 점점 비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형제 앞에서 제 위로나 격려의 말은 정말 현실성 없고 부질없는 공허한 외침처럼 들렸습니다. 우직스럽게 외길을 걷던 그 형제의 얼굴이 오늘따라 그립습니다.

 부패지수가 높은 사회일수록 의인의 길, 그리스도인의 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정직하고 청렴한 인생은 언제나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청정한 인생이 진정 자랑스러운 인생일텐데, 오히려 주변머리 없는 사람, 요령 없는 사람, 대책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아닌 것' 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야말로 주님의 날을 잘 준비한 사람입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끓어오르는 뜨거운 피를 지닌 사람, 당장 내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할지라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옆길로 간다 하더라도 나만은 정도(正道)를 걷겠다는 사람이야말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 주님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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